내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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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3-04-03본문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2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글로리 시즌2가 나온 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화제성은 여전한 것 같다. 출연한 배우들과 관련된 기사들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드라마 리뷰 영상도 높은 조회 수를 유지 중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잔인하거나 불편한 장면을 잘 못 보는 나는 학교폭력 장면이 나오는 시즌1을 시청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시즌2를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학교폭력을 전문으로 하시는 친한 변호사님의 소개로 결국 더 글로리를 시청했다. 그리고 더 글로리 시즌 1, 2를 정주행한 후의 감상평은...
"내가 왜 이걸 지금에서야 본거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정말 식음을 전폐했다. 더 글로리를 보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그래도 내 전문분야와 관련하여 시청자들이 궁금해할만 한 이야기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바로 전재준의 이야기다.
예솔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전재준. 예솔이의 친권자가 되고자 했던 전재준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변호사는 하도영과 박연진이 이혼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답한다. 정말로 하도영과 박연진이 이혼을 하면 전재준은 예솔이의 (법적인) 아빠가 될 수 있는 길이 생길까?
모자관계는 분만이라는 외형적 사실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확정되므로 문제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문제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실제 아빠가 누구인지 매번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우리 법은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하여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이른바 '친생추정'규정을 두고 있다.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
①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더 글로리 속 설정과 같이 예솔이가 사실은 하도영의 딸이 아닌 전재준의 딸인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박연진이 예솔이를 출산할 당시 박연진과 하도영은 부부관계였기 때문에 예솔이는 하도영의 자녀로 '추정'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친생추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리고 친생부인의 소는 '부부의 일방'이 다른 일방 또는 자를 상대로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제기하여야 한다.
즉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원고 적격'이 있는 자는 예솔이의 부모인 하도영 혹은 박연진뿐이다. 전재준에게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이는 하도영과 박연진이 이혼을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혼은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단절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마저 단절시키지는 못한다. 따라서 하도영과 박연진이 이혼을 하더라도 여전히 하도영과 예솔이의 부자관계는 유지된다.
그런데, 극중에서 박연진은 예전부터 예솔이가 전재준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제소기간 2년이 지났다.) 결국 전재준이 예솔이의 친부가 되기 위해서는 하도영이 박연진 혹은 예솔이를 상대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런데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하고자 하는 하도영의 모습을 보면 처음부터 전재준에게는 예솔이의 아빠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물론 현재 전재준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말이다.
만약 하도영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하도영과 예솔이 간의 친부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에는 전재준은 예솔이를 ‘인지’하여 자신이 예솔이의 친권자가 될 수 있다. 전재준에게는 그 방법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