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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바로 잡은 1심 판결.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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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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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온 상황을 정확히 기억한다. 평소 사람 얼굴이나 목소리, 이름 등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이 의뢰인은 토요일에 미리 상담 예약을 하고 오신데다 상담을 하자마자 수임을 결정하셨고, 직업도 약사로서 전문직이셨기에 기억이 남는다.

 

2021102. 의뢰인이 1심 판결문을 들고 찾아오신 날은 1심 판결이 선고된 2014213일로부터 7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상대방(원고)은 의뢰인이 2011년도에 약국을 임대하여 운영했던 건물주였는데, 의뢰인이 임대료 중 3,500만원을 갚지 않았다고 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의뢰인은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한 줄 몰랐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거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의뢰인은 경제적인 이유로 채권자들을 피해 도피생활 비슷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사무실을 찾아오기 며칠 전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이 내려져 의뢰인의 신용카드사에 대한 채권이 압류되면서 소송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한 의뢰인은 변호사 사무실을 여러 군데 찾아다녔으나 해결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사무실을 찾으신 것이었다.

 

항소기간은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이다. 의뢰인의 주소가 파악되지 않아 법원에 게시하는 절차인 공시송달을 통해 송달이 되어 판결문에 대한 확정은 이미 2014년도에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이러한 경우 추후보완항소를 하여야 하는데, ‘공시송달로 인하여 소송 및 판결이 내려진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는 판례상 정당한 추완항소 사유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추완항소장을 제출하였어야 했다. 부랴부랴 추완항소장을 제출하였다.

 

본안상 쟁점은 이러했다. 20094월부터 200911월까지 임대료 중 45일치인 1,500만원, 20101월부터 20103월까지 임대료 중 2,000만원 합계 3,500만원을 미지급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의뢰인이 임대료를 미지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1심 법관은 공시송달로 진행되는 사건 특성상 증인진술서를 요구했는데, 상대방이 제출한 증인진술서에는 상대방 및 의뢰인을 잘 알고 있으며, 의뢰인이 월 1,000만원의 임료를 받고 임대한 사실, 의뢰인이 임대료 3,500만원을 미납한 사실, 증인이 상대방 부탁을 받고 의뢰인을 몇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시 의뢰인이 가진 돈이 없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1심 법관은 이를 근거로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의뢰인의 입장은 이러했다. 20094월부터 200911월까지는 약국을 동업으로 운영하면서 생긴 수익을 반으로 나누고, 2010년부터는 매월 임대료를 1,0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하는 인증서를 작성한 후 동업기간 중 수익 9천몇백만원을 1억원으로 보아 5천만원을 지급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매월 1,000만원의 임대료를 모두 지급했다는 것이었다. 2009년 소득금액증명, 2010년 통장거래내역 등을 통해 그 사실을 입증했다.

 

의뢰인이 유안을 통해 추완항소를 제기하자, 상대방도 대리인을 선임했는데 상대방 대리인은 인증서 작성과 별도의 구두약정있다고 주장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인증서에 반하는 그 구두약정을 입증하지는 못하였다. 항소심 재판은 유난히도 꼼꼼하신 재판장님이 계신 재판부에서 진행되었는데, 보통의 항소심 재판과 달리 수시로 내려진 석명준비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준비서면만 10번을 써내게 되었다. 재판부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일일이 대응하고, 상대방 주장에 대한 반박에 재반박, 재반박에 대한 재반박을 하면서 기록은 점점 두꺼워져 갔다.

 

사건이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상대방 대리인은 1심에서 증인진술서를 제출한 증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신청하였는데, 우리로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1심을 다투지도 못하고 패소한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증인 진술을 탄핵하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증인 출석을 피하려고 불출석 사유서까지 냈던 증인은 결국 과태료 부담에 증인으로 출석하였는데, 의뢰인은 증인을 알지도, 본 적도 없다고 하였다. 증인은 상대방의 법률적인 사무를 처리해주던 사람이었다. 상대방 대리인의 기대와 달리 위증의 리스크를 두려워 한 증인은 자신이 증인진술서를 작성해 준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일관하였다. 나는 반대신문을 통해 피고(의뢰인)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 증인이 상대방과 의뢰인간의 약정을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는다는 사실, 증인이 의뢰인을 만나서 밀린 임대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하지 못하는 점을 끄집어냈다. 그 재판을 보았다면 증인진술서가 거짓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상대방 대리인은 인증서에 기재된 부가세 별도라는 기재내용을 들며 적어도 1,500만원의 부가세 상당 임대료를 미지급했다는 예비적 주장을 들고 나왔는데, 세금을 부담스러워했던 상대방이 부가세를 신고하지 않길 원하여 부가세를 받지 않기로 약정을 했던 실제 사실에 반하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결국 부가세는 부가세일뿐 임대료라고 볼 수 없고, 부가가치세는 최종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지만, 사업자는 최종소비자가 부담한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는 것일 뿐이라는 세법과 상대방과 의뢰인간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에 부합하는 거래내역, 통고서등을 토대로 상대방 주장을 깨뜨렸다.

 

항소를 하고서도 16개월이 지난 뒤에야 선고가 내려졌는데, 감사하게도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원금은 3,500만원이었지만 9년 동안 발생한 연 20%의 이자를 더하면 총액이 1억이 넘는 채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비범한 능력 × 특별한 노력으로 이루어 낸 스페셜 케이스에 또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신이 나서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여 기쁜 소식을 전했고, 의뢰인은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런 케이스들이 쌓이니 자발적으로 유안을 홍보하는 무급사무장 의뢰인들이 많아졌다. 가장 바람직한 영업전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