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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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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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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벌초를 하러 본가에 다녀왔다. 불과 3주 전에 뵈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마치 1년 만에 나를 만난 것처럼 엄청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그동안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지난 2016, 두 분 모두 은퇴를 하시고 서울 생활을 정리한 후 고향에 내려가셨다. 집 앞 작은 마당에 텃밭을 가꾸며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신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어서 못 살겠다고.

 

나는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해본 적이 없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시험공부라는 아주 거창한 핑계를 대며 히스테리를 부렸고 매번 부모님 속을 썩였다. 어머니 생신 때 백합 한 송이 사드렸던 것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께 효도한 기억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니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보인다. 하루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울컥 하더라. 자기밖에 모르던 철 없던 아이는 32살이 되어서야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이 늦었지만 앞으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식이 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내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가족, 친족 간의 법적 분쟁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친척이나 형제 사이의 다툼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부모자식 간의 소송이 굉장히 많아 놀랐던 적이 있다. 오늘은 그 중에 한 사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남편과 사별한 의뢰인()은 같이 살고 있었던 하나뿐인 아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되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의 대부분인 7억 원을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약속하였다. 아들은 7억 원을 받은 이후에도 이전과 같이 어머니를 잘 챙기겠다고 이야기하였고 어머니 역시 아들이 자식 된 도리로서 자신을 잘 부양할거라 믿고 7억 원을 이체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7억 원을 받은 아들은 그때부터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자주 찾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어머니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이 1년이 넘도록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우리 사무실에 방문하셨고 아들에게 증여한 7억 원을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는지 문의하셨다.

 

민법에 따르면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를 해제할 수 있으나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즉 어머니가 아들에게 7억 원을 이체한 이상 그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다시 반환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7억 원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잘 말씀드렸음에도 의뢰인은 소송에서 지더라도 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으면 좋겠다며 내게 소송을 진행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증여계약 해제 소송에서 나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7억 원을 증여한 것은 단순 증여가 아닌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7억 원을 지급받는 대신 어머니에 대한 병간호나 부양의무를 부담한다는 일종의 '조건부 증여계약'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물론 아들이 "7억 원을 받게 되면 이전과 같이 어머니를 잘 챙기겠다."는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아들이 이를 부인한다면 결국 어머니는 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에게 전달 되었나보다. 조정기일에서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앞으로는 어머니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에게 부양의무를 다 하지 않을 경우 증여 받은 7억 원을 다시 반환하겠다는 취지의 약정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소송이 마무리되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증여받은 뒤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리고 관계를 단절한 자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죽기 전에는 자녀에게 큰 돈을 증여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이러한 분쟁을 막기 위해 자녀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담은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런 계약서까지 작성 해야하나 싶다.)

 

작년에 자녀가 부모의 재산을 증여받고도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무시할 때 자녀에게 증여를 완료한 재산이더라도 부모가 이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의 입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었다. 비록 법률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불효자에 대해서는 생전증여 혹은 상속을 사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 곁에 계실 때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