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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 정당 자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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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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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승리를 통해 5년만에 집권여당이 된 정당 국민의힘’(이하 이라고 한다)의 내홍이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다. 대통령선거,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자치의원선거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윤리위에서의 당대표 당원권 정지라는 초유의 징계 이후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비상대책위 위원장을 두기로 한 결정의 적법 여부와 관련하여 법원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하였고, 법원은 이를 인용하였다. 금전채권이나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채권의 집행보전을 위한 잠정적 처분인 가압류에는 종류가 별도로 없는 것과 달리 가처분에는 다툼의 대상에 관한 청구권 보전을 위한 가처분(민사집행법 제300조 제1),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2종류가 존재한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가처분은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이었다.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당사자 사이에 현재 다툼이 있는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기까지 현상의 진행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권리자가 현저한 손해를 입거나 급박한 위험에 처하는 등 소송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에 하는 보전처분인데, 단순히 현상을 동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상을 변경하여 잠정적으로나마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는 점에서 가압류나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과 구별된다.

 

이 가처분 결정을 두고 입장에 따라 정치의 사법화’, ‘정당민주주의의 침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법적 영역으로 떠넘겨져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이와 관련된 비판은 적어도 법적인 측면에선 온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헌법은 제8조 제1항에서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2항에서 정당의 목적, 조직,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정당 운영과 관련하여 법에 위반하거나, 비민주적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가처분은 당의 당헌에 근거하여 제기된 것이었다. 당헌 제96조에서는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궐위란 사망, 탄핵, 판결 기타의 사유로 자격을 상실한 경우 등 재직하지 아니한 경우를 의미하는 반면, 사고는 재직을 하면서도 질병이나 기타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당 대표의 당원권이 6개월 정지된 것은 당대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로서 사고에 해당하지 궐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은 법리적인 면에서 문제가 없다. 국민의 힘 당헌에서도 궐위의 경우엔 권한대행 규정, 사고의 경우엔 직무대행규정을 두어 궐위와 사고를 구별하고 있다. 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법원 판단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것이라고 본다. 당대표의 당원권 정지결정이 비대위출범으로 인하여 사실상 당대표 해임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바, 권리자가 현저한 손해를 입거나, 급박한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고소·고발 등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상황의 반전을 모색하는 것이 일상화된 작금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정당과 정치인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지, 분쟁의 해결의무를 지닌 법원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선진국다운 정치가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텐데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가 국민을 기쁘게 해주는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