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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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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영 변호사 작성일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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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맡은 강간사건에 대한 판결이 선고 되었고, 의뢰인인 피고인은 절대 강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극구 범행을 부인했으나, 결국 유죄가 선고되었다. 

 

최근 발생하는 성범죄, 특히 강간사건에 있어 그 범행형태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기 위해 명시적인 폭행이나 협박 등이 동원된 강력범죄 형태의 강간사건이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면, 최근에는 명시적인 폭행이나 협박 등이 수반되지 않아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가 모호한 사건의 비중이 높다.

 

사회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남녀 간의 만남이 온라인을 통한 만남으로 확장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온라인 상에서 친분이 생겨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가진 남녀가 성관계를 한 후, 피해자는 강압적으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상황들이 왕왕 발생하는 것이다.

 

강간행위는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피해자의 인격을 극도로 침해하는 중범죄임이 틀림없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엄격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지만, 최근 실무에서 강간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조금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성범죄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물증이 없어도 피해자가 자신이 강간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한다면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 강간피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구체적 피해내역을 진술한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기관에 강간피해를 신고한 절대 대다수의 피해자들의 진술은 진실에 기반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내 경험상으로도 강간피해를 신고한 100명의 피해자 중 99명의 피해자는 실제로 강간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호소하는 분들이고.

 

하지만 실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허위 강간피해 신고를 하는 케이스를 봐온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일관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범죄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범죄를 제외한 다른 범죄 혹은 다른 법적절차에서는 일방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이와 같은 사실인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으며, 매우 엄격히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고민은 더욱 짙어진다.

 

극단적인 가정이겠지만 누가 나에게 허위강간피해신고를 하여 유죄판결을 받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라고 묻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성범죄 관련 사건을 맡아 수행하는 경우에는 어떤 다른 사건보다도 사실관계를 꼼꼼히 체크하고, 피해자 진술에 모순점은 없는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술이 변하지는 않는지 등을 세세하게 살피며 사건을 진행하게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피해자의 진술과 피고인의 진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특별한 이유 없이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것이 과연 공정한 법적절차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된다.

 

법조계에는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죄 없는 이(무고한 사람)를 벌해서는 안 된다는 오랜 격언이 있다. 법적절차 전반에 있어 잘 지켜지는 듯한 해당 격언이 성범죄에 있어서도 관철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