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게 국민참여재판이란?
페이지 정보
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10-12본문
국민참여재판이란 우리나라에서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배심원에 의한 형사재판제도를 말한다. 독일과 같은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서 영미법계의 제도인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 때문에 007년 6월 1일 공포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만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하여 유죄·무죄 평결을 내리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도록 하여 위헌논란을 비껴갔다.
변호사들은 국민참여재판을 하고 싶어할까? 보통은 국민참여재판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법관에 의한 형사재판 대비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법률가들끼리는 세세히 설명하지 않고 간단한 법률용어로도 이해하는 부분을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PPT 등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배심원들 앞에서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변론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재판을 경험해 본 시민들은 법정물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재판이 너무 빨리 진행되고, 서면심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특별히 말을 해볼 기회도 없다는 점에 당황하기도 한다. 변호사들은 그러한 재판진행에 익숙해져 있는데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영화처럼 구두변론을 해야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참여재판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있다. 묵시적 합의에 따라 성관계를 한 것이라는 이유로 범행을 부인할 때에 법관보다 일반국민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이다. 또는 지속적 학대나 폭력에 의한 우발적 살인과 같이 양형과 관련하여 일반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일 것이다.
얼마 전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역할을 한 의뢰인의 사기 재판을 두고 국민참여재판을 할 지심히 고민을 했었다. 객관적으로 현금수거책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뢰인은 네이버에도 나오는 아웃소싱 회사에 취직이 되어 사무보조일을 한다고 생각했었고, 근로계약서, 비밀유지서약서등을 작성한 후에 일을 하면서 사실로 믿었다는 것이 상대방과 나눈 통화 녹음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경비에 들어간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자신의 카드를 이용하여 결제한 택시비를 모두 메모해두었다. 그렇지만 경찰과 검찰은 그러한 의뢰인의 변소를 믿지 않았고,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기소하였다. 의뢰인이 이 사건에 가담하게 된 경위, 상대방과 나눈 통화내용, 남아있는 대화내용, 그만두게 된 경위 등을 고려하면 ‘혹시 보이스피싱이어도 어쩔수 없지’라는 미필적 고의보다는 ‘설마 아닐거야’라는 인식있는 과실에 가깝다는 점을 설득하는 데에는 평균인을 기준으로 사후에 법리적 판단을 하는 법관보다는 일반시민을 설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변호인으로서의 판단 때문이었다.
부담스럽지만 국민참여재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해당법률을 찾아보다가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은 「법원조직법」 제32조 제1항(제2호 및 제5호는 제외한다)에 따른 합의부 관할 사건, 동 사건의 미수죄·교사죄·방조죄·예비죄·음모죄에 해당하는 사건, 이 사건들과 관련된 사건들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최근에 그 대상을 확대하였다는 법원 내 광고물을 본 것 같은 기억 때문이었다. 허탈한 순간이었다. 선택지 중 하나가 없어졌다는 후련함이 더 크지는 않았다.
이번 재판을 포함하여 국민참여재판을 3차례 고민하였는데, 신청을 한 사건은 피해자의 반대의사로 무산되었고, 1차례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하여 포기하였으며, 이번에는 대상이 되지 않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경험은 형사변호인으로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기회가 되고 의뢰인에게 유리하다면 적극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그날이 빨리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