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인 진실과 재판상 진실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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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영 변호사 작성일22-09-26본문
흔히 재판은 진실을 밝혀내는 절차라고 인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그렇지 않다. 재판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완벽한 진실을 파악해 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결국 재판이 밝혀낼 수 있는 진실은 증거가 뒷받침 될 수 있는 절차적인 진실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에게 채무를 변제함에 있어 현금으로 주었다가 나중에 그 채무를 변제했는지 여부가 다투어지는 경우에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돈을 현금으로 갚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진정성 있게 해당 사실을 주장하고, 또한 평소 행실 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절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정황이 존재하는 경우라도 이에 대한 영수증 등의 직접적인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이를 재판에서 인정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재판을 하는 판사 역시 사람인지라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듣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객관적으로 현출되는 증거에 의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법은 항상 가진 자의 편이다’ , ‘약자는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는 말들이 이러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재판상 원칙들을 잘 숙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단순히 상대방을 믿고 선의에 기대 행동하기 보다는 특정 행위나 거래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남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사건을 선임하여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실체적 진실과 재판상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들이 왕왕 존재한다. 나의 의뢰인으로부터 들은 실체적 진실을 어떻게든 재판에서 인정받게 만들어야 하는데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을 때에는 실체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판단을 받는 경우들이 생긴다. 이런 경우에는 진심으로 억울해 하는 의뢰인에게 위로 외에는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의 유혹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방의 주장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우리 측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경우이다. 이럴 때에는 변호사로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전략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진실이므로 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야할지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변호사는 실체적 진실보다는 재판상 진실에 기반하여 의뢰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