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이중적인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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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09-26본문
보험(保險)이란 경제생활상의 우연한 사고에 대비하여 동일한 위험에 처하여 있는 자들이 법적 위험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기술적 제도라는 것이 상법에 규정된 ‘보험’의 의의이다. 그래서 보험법은 ① 기술성, ② 단체성, ③ 선의성, ④ 사회성, ⑤ 상대적 강행법규성을 특성으로 갖고 있다. 보험의 목적이란 보험사고 발생의 객체를 의미하는데 손해보험의 경우 피보험자의 물건이 되고, 인(人)보험의 경우 피보험자의 생명이나 신체가 보험의 목적이 된다. 보험회사라고 말하는 보험계약자는 보험자이고, 보험자와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보험가입자를 보험계약자라고 하며, 인보험의 경우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를 보험에 붙여지는 자를 피보험자, 보험사고 발생시 보험자에 대하여 보험금지급청구권을 가지는 자를 보험수익자라고 한다. 손해보험의 경우 피보험이익의 주체를 피보험자라고 하기 때문에 보험수익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험은 동일한 위험에 처하여 있는 다수인이 사회생활상의 위험에 대비하여 단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고지의무, 위험변경증가시 통지의무, 보험가입자의 평등대우원칙등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중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보험자에 대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고, 부실고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의무를 말한다. 보험계약자의 윤리적 선의성이 요구된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보험금과 보험료의 수지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불량위험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고지의무를 필요하고, 이를 위배할 경우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험계약자에게 엄격한 윤리적인 기준을 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것만큼 보험사도 윤리적일까. 치매에 걸리면 그 비용을 가족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단비, 입원치료비 등등을 보장해준다는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험계약을 했을 때 보험료의 지급으로 수익을 ‘확실히’ 창출되고,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대부분의 보험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며, 보험금을 많이 지급하는 상황이 되면 보험료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어떻게 해서든 많이 하면 이익이 된다. 그래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광고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광고만 보면 보험에 들지 않는 것이 무조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보험금을 청구할 때 광고처럼 보장내용을 충실히 지급하기 보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험금의 지급을 미룬다거나 지급을 거절하는 보험사의 태도를 보고 보험사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가 걸릴지 알 수 없고, 걸리면 가족들의 경제적·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치매에 관한 보험’을 든 의뢰인이 있었다. 위 의뢰인은 보험에 가입하기 이전에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증상을 느껴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경도인지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이나 기타 인지기능의 저하가 객관적인 검사에서 확인될 정도로 뚜렷하게 감퇴된 상태이나,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능력은 보존되어 있어 아직은 치매가 아닌 상태를 의미하는 바,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라고 볼 수 없다. 위 의뢰인은 보험계약 가입 후 5년만에 치매의 정식 명칭인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고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였으나 보험사에서는 지급을 거절하였다. 보험계약 전 ‘경도인지장애’의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을 두고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며, 내재되어 있던 경도인지장애가 치매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치매로 보험금 지급할 때 보험사의 기준이었다. 보험사의 약관상 ‘치매’는 약관에서 정한 일정정도 이상의 치매로 진단·확정되고, 이로 인하여 CDR척도 3점 이상의 인지기능장애가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에는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맞춘 상당한 정도의 치매에 대해서만 해당이 된다고 하면서, 보험금 지급 거절사유로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치료내용에 대해선 경도인지장애도 치매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중적인 잣대에 분개를 금치 못했다.
결국 법원을 통해 보험금 지급청구를 하였을 때 경도인지장애를 치매로 볼 수 없다는 점, 보험사에서 보험계약 전에 알릴 의무의 내용에 ‘경도인지장애’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의뢰인은 보험사의 요구사항에 성실히 응했다는 점을 들어 보험사의 주장을 꺾어버렸다. 평소 ‘드라이’하게 서면을 쓰는 편인데, 이때에는 어느 정도 감정을 섞어서 쓰게 되었다. 의뢰인은 승소판결을 받아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고, 나도 괜찮은 승소이력을 추가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사회전체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험사기가 적지 않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보험사가 ‘호구’가 되어 선량한 보험계약자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보험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중적인 잣대로 들이대고 있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보험이라는 제도의 본연의 목적은 위험의 분산이지, 보험을 취급하는 회사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