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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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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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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을 맡아 변호함에 있어 범죄사실을 시인하기에 억울함이 있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돈을 갚아야 할 법적인 의무를 인정하지만, 편취의 범의로 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기죄의 부인이나, 저 사람을 때린 사실 자체가 없다는 폭행행위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법적인 의무를 인정하기에 갚아야 할 돈을 갚으면서 편취의 범의를 부인할만한 정황들을 토대로 범의에 관한 법리적 주장하는 것은 재판부에서 나쁘게 보지 않는 편이고, 폭행이라는 자연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는 의뢰인의 주장에 반하는 CCTV등의 객관적 증거가 명징하게 사실을 비추지 않는 이상 믿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폭력사건에 있어 성행위는 있었으나 사실상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범행을 부인할 때에 변호인은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객관적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만 있다고 할 때 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과연 깨뜨릴 수 있을까? 어떻게 깨뜨려야 할까? 라는 변호인으로서의 본질적 고민부터 만약 그 진술의 신빙성이 깨뜨려지지 않아 유죄가 인정되었을 때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구속이 되는 실질적 위험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변호사님은 범행을 부인하기 보단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라는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리스크를 떠안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판사도 신이 아니고 일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어진 증거 내에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실증적 한계도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진짜 고민이 되는 상황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기는 하나, 객관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그대로 믿기 어렵거나,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다. 보통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경우, 진술이 객관적 증거나 사실에 배치되는 경우, 경험칙이나 논리법칙에 위배되는 경우이다. 실제 재판에서 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적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특수한 피해자가 아니고선 상정하기 어렵다. 만약 그러한 특수한 피해자라고 하면 피해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일관성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법원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을 배척할 때 보통 첫 번째로 드는 판시가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기관 및 법정에 이를 때까지 일관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드는 판시는 그 진술에 허위 또는 과장이 섞일만한 특별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허위의 동기가 확인되지 않으면 일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에 2년에 걸쳐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받은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불장난하듯 이뤄진 성적인 부문에서의 비행(非行)은 한참이 지난 뒤에 피해학생의 학교폭력신고로 형사 사건화 되었고, 두 사람이 합의하에 벌인 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사건 전후의 카카오톡 자료를 수사초기에 제출했음에도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고, 의뢰인의 변소는 거짓으로 단정지었다. 검찰 송치 후 사건의 실체에 관한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하여 검찰에서는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명하였는데, 그때에도 경찰은 별 다른 추가 증거가 없음에도 사건을 일년 가까이 갖고 있다가 같은 의견으로 송치를 하였다. 만약 기소가 되면 국민참여재판을 불사하겠다는 협박성 의견서를 내고서야 무혐의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학교폭력사건은 확정이 되어 강제전학처분을 받게 되었고, 의뢰인은 수사를 받느라 공부에 전념하지 못해 학업에 적지 않은 방해를 받았다.

 

만약 의뢰인이 기소되어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근거로 유죄가 인정되고, 감옥생활을 했다면 그 의뢰인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펼쳐질까. 모르긴 몰라도 그 억울한 감정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은 그 질문자의 구체적 질문이 얼마나 디테일한 지에 따라 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좋은 표지이다. 그렇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질문을 적절히 하지 않고, 믿기 어려운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할뿐이라면 그 진술이 반복된다고 해서 신빙성을 인정해서는 실체적 진실과 멀어질 뿐이다. 긴팔원숭이 정도의 팔 길이가 아니라면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 자신과 가까운 쪽 가슴을 만지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진술이 일관되었다고 하여 강제추행죄로 기소가 된 사건에서 그 진술의 일관성을 그 진술의 경험칙 위배로 깨뜨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