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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에게 한푼도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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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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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의뢰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일정 기간 혼인을 지속해온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면 재산분할이라고 해서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나누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경제활동을 담당해 온 남성분들은 왜 자신이 고생하면서 모아온 재산을 돈도 벌어오지 않고 집에만 있었던 아내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작가 와카쿠카 미도리는 가사노동에 대해서 "설거지, 세탁, 화장실청소, 기저귀 갈기 같은 집안일은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고 더럽고, 명예도, 돈도 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도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육체노동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가사노동은 필요한 일이지만 보람을 찾기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우리 법원은 재산분할 기여도를 산정함에 있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여성도 남성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사회·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였고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집안일은 아내의 전유물이 아니며 남편도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사노동에 대해 성별 역할을 고정화하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불리던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매우 환영한다. 과거에 가사노동에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던 것에는 예로부터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적 사상과 유교 사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평과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오늘날에는 법 역시도 일반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평생 전업주부로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양육하고 청소, 빨래 등 가사일을 주로 담당하였다면 경제활동을 하는 남편 못지않게 부부공동재산의 형성&유지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듯 법원도 가사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관하여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판결문 안에도 가사노동에 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고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기여도를 30% 이하로 인정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40~50%의 기여도를 인정하는 판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에 중국 법원에서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아내의 가사노동을 금전적으로 환산한 만큼의 금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할 것을 명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 법원도 양육비산정기준표를 참고하여 양육비를 책정하듯 부부의 가사노동의 구체적인 가치에 대한 연구나 조사를 통해 돈으로 환산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산분할 기여도 판단에 반영하면 어떨까.

 

가사노동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난다. 그러나 전업주부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고마워하는 마음조차 갖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가사노동과 관련된 갈등은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가사노동으로 인한 갈등도 줄어들고 이를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도 줄어들지 않을까. 직장생활이 힘들 듯 가사일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부부라면 서로의 힘든 점을 인정하고 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