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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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2-11-21본문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독일의 유명한 형사전문변호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한 특이한 사건들을 11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군생활을 하던 2010년에 읽었다. 법학과에 진학하여 변호사의 꿈을 꾸고 있었던 나를 위해 친구가 선물을 해준 것이었는데,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롭게 쓰여져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떤 사건이든, 만약 범죄자로 몰린 자가 흉악범죄를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범죄자는 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경우라면 당연히 실체적 진실을 밝혀 무죄를 받아내어야 할 것이고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실제로 행한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당시에도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변호사의 꿈을 꾸고 있던 내게 이 책은 내가 변호사의 역할, 존재이유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어 개업을 한 지금 내가 가장 기피하는 사건은 형사사건이다. 지금은 이혼·민사 전문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혼사건보다도 형사사건을 더 많이 경험했다.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고소하는 사건보다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건을 맡는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그럼에도 형사사건을 내 전문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형사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쳤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로 성범죄 피의자 혹은 피고인을 변호하는 사건을 많이 수행했는데, 대부분 무죄를 다투는 사건이었다. 이 경우, 피해자를 법원으로 불러 증인신문을 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때는 필연적으로 피해자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 경위 등과 관련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피해자들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소환해낼 수밖에 없고 이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2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울렸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기억이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여부를 떠나 내가 담당했던 성범죄 사건들은 모두 피고인의 유죄로 끝이 났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눈물을 눈앞에서 본 판사들은 하나같이 피고인에게 굉장히 중한 형벌을 내렸다. 그 중에는 사건을 진행하면서 피고인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피고인을 믿고 변론을 했던 것인데 유죄판결이 나오는 날이면 내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생각에, 혹은 억울한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형사사건과 멀어졌다.
1심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형사사건의 중 약 1% 정도만이 무죄가 선고된다. 100명의 피고인 중 1명은 억울하게 기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1명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 변호사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만 앞서 이야기 한 이유로 나는 다른 형사전문 변호사님들에게 위 역할을 양보하려고 한다. 변호사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커버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 잘 하는 분야에서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와 내 의뢰인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