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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백' 그리고 비밀유지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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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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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자백'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영화 '자백'을 보고 왔다. '자백'2017년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 한 작품인데, 전에 '인비저블 게스트'를 보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스릴러, 반전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터라 한국에서 리메이크작이 나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밀실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누명을 쓴 유민호(소지섭)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현재 여러 정황증거들은 유민호에게 불리한 상황. 양신애는 유민호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사건의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아무래도 원작을 너무 인상깊게 봤던 터라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식으로 리메이크가 될지 원작과 다른 점을 찾으며 보는 것도 나에게는 큰 재미였다. 게다가 원작을 봤던 당시의 나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기에 변호사가 된 지금은 그때와 또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양신애가 한승재의 엄마가 아닌 실제로 유능한 변호사였고, 죄를 저지른 자는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개인의 신념 아래 자신이 유민호로부터 들은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긴다면 어떻게 될까.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런 걱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선임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내가 잘못한 것들까지 전부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정보가 다른 곳으로 새면 어쩌나. 영화 안에서도 유민호는 양신애에게 실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이야기 한다. 변호사를 테스트 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는 변호사인지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인적사항을 감추거나 내가 물어보더라도 사실관계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의뢰인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나 변호사는 법적으로 의뢰인의 비밀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변호사법에서는 변호사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의 누설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형법에서는 변호사가 그 업무처리 중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는 개업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유효하다.

 

게다가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라고 하여 위법한 절차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의 경우에는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형사법상 대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양신애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여 자신이 취득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전달했고 이것이 유민호의 유죄를 입증할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에 따라 유민호를 살인죄로 처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본다.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내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오로지 나를 위한 변론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 의뢰인이 변호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변호사도 의뢰인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소송이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사람은 타인을 속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인다."라는 말이 있다. 소송에서 당사자(의뢰인)와 변호인은 동일하게 취급된다. 판사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편인 변호사까지 속일 생각을 하는 의뢰인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며, 소송전체를 그르칠 수 있다. 물론 이로 인한 피해는 모두 의뢰인의 몫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는 신뢰관계가 생명이다. 의뢰인은 최소한 변호사에게만큼은 정직하여야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관계를 공유하여야 한다. 그것이 승소가능성을 높이는 최상의 소송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