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따다가 이태원 압사참사를 보고 느낀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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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10-31본문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고향인 경북 봉화로 귀촌하셔서 사과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주말 일찍부터 채비를 하여 시골로 향했다. 사과는 마트나 시장에 가면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대중적 과일이지만 막상 농사를 짓는 것은만만치가 않다. 꽃이 피기 전에 가지 숱을 쳐주는 ‘전지’작업을 해야하고, 꽃이 핀 후에 과실이 달리면 열매를 크게 키우기 위해 솎아내기를 하는 ‘적과’를 해야하며, 상품성의 중요요소인 색깔이 잘나도록 잎도 따줘야 하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부분을 위해 은박지도 깔아줘야 한다. 물이랑 비료만 주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았는데 알아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여자들이 손이 닿는 곳까지 사과를 따내면 남자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사과를 훑어낸다. 높은 곳에 올라가 사다리에 의지하여 멀리 있는 사과를 따다보니 사과를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크고 색깔이 발그레한 사과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고생하신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매우 당황하게 된다. 사과가 가득 담긴 네모난 플라스틱 박스를 옮기는 건 외발 수레에 의존하는데 무거운 사과박스 2개를 싣고 좌우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경사진 땅에 잘못 세우면 수레가 넘어지면서 사과들이 쏟아져버리기도 한다. 사과를 한 두 개 떨어뜨리는 것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부모님이 혹시라도 보실까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별거 아닌거 같은 사과알이 수십알이상이 되면 언제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토요일 수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보는 부모, 형제, 친척들과 정겹게 술을 마시고 잠든 후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 알게 된 이태원 압사참사는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후진국에서 축구경기장등에 인파가 몰려 부실한 경기장이 무너지며 대규모의 압사사고가 있다는 뉴스를 보긴 하였으나, 21세기에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에서 헬로윈을 즐기려다 소중한 15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라니.. 기가 차고 팔짝 뛸 노릇이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한 제한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작년에도 17만명이나 운집했다는 이태원이다. 젊은이들에게 그 어떤 명절보다 중요한 행사라는 ‘헬로윈’. 개인적으론 한국에 들어와 변종된 ‘헬로윈’ 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력을 이용하여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만든 ‘행정안전부’. 사과를 가득 담은 상자를 불안한 외발수레에 의자하여 옮기는 작업을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좌·우 균형을 맞추고, 울퉁불퉁한 곳은 피하며, 최대한 평지에 세운 후 박스를 내리는데, 그 좁은 이태원 골목에 수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그러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고 권력을 모아서 준 것 아닌가.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고 이후 행안부장관의 브리핑을 보면 사고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이없음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사과는 쏟으면 주워 담을 수 있다. 하룻밤에 150여명의 소중한 구성원을 잃어버린 가족의 비통함은 그 무엇으로도 해소할 것인가.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