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아니라 사무장이랑 소통하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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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변호사 작성일23-01-18본문
며칠 전 이혼소송의 항소심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1심은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을 하셨는데, 1심 판결의 내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온 것 같아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체 기록을 본 것이 아니라 1심 판결문과 의뢰인의 진술에만 의존해서 상담을 진행했음에도 1심 소송 진행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상대방의 부정행위와 관련된 증거, 재산분할 기여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잘못된 주장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항소의 실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의뢰인에게 1심 판결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안내를 해드렸고 결국 의뢰인은 나를 믿고 가기로 하셨다.
상담 과정에서 나는 의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직 1심 기록을 본 것은 아니지만 1심 판결이 이렇게 나온 이상 1심을 담당했던 변호사님께서 (주요 쟁점에 대한) 주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에야 저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오히려 1심에서 적절한 증거를 제시하며 충분히 다투었음에도 이러한 판결이 나온 것이라면, 항소심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1심 기록을 검토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도(?) 1심을 담당했던 변호사님께서 (주요 쟁점에 관해) 충분한 주장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정말 엉망으로 소송을 진행하셨다.
내가 느낀 바에 대해 이야기 하자 의뢰인은 말했다. "제가 변호사님께 말씀을 안 드렸는데요. 사실 저 1심에서 변호사님이랑 거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제 사건 서면도 사무장님이 직접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변호사님은 제 전화도 잘 안 받으시고.. 변론 때만 간신히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잠깐." 의뢰인이 알려준 변호사님을 검색해보았다. 그 변호사님이 속한 법무법인은 큼지막하게 이혼전문 법무법인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의뢰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것이다. A교수가 수술을 집도할 것이라 믿고 맡겼는데 그 아래에 있는 레지던트나 혹은 의사 자격이 없는 제3자가 수술을 집도한다면 아파서 해당 병원을 찾아간 그 환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아주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변호사업계도 마찬가지다. 사무장이 자신의 사건을 (실질적으로)처리할 것이라 믿고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은 없을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사무장이 서면을 일부 작성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사무장을 두고 있는 사무실 중 일부는 사실관계 조사, 의뢰인과의 소통, 서면 작성 등을 사무장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정작 담당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건의 사실관계도 잘 모르는 변호사가 얼마나 변론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의뢰인의 몫이다.
이혼소송의 경우에는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과는 달리 사건 자체가 당사자(의뢰인)의 삶과 직결되어있다. 때문에 변호사는 당사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 소송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사건들보다 변호사와 당사자와의 소통이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혼사건은 꼭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처리하고 변호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무실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무실이 사무장을 두고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