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변호사 한다. 이맛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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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3-01-18본문
법무법인 유안의 대표변호사 3명이 ‘킹무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처음 시작할 때 피디님이 추천했던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변호사님들은 수임료가 낮지만 쉬운 사건을 선호하시나요, 아니면 어렵더라도 수임료가 높은 사건을 선호하시나요?’. 물론 변호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건은 안변이 말한 대로 ‘수임료가 높은데 쉬운 사건’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은 거의 없다. 싸고 좋은 물건이 없듯이 의뢰인을 소위 눈탱이치지 않는 한 쉬운 사건에 높은 수임료를 받기는 어렵다. 당시 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렵더라도 수임료가 높은 사건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건의 난이도와 수임료의 고저에 따른 선호도는 어떠한가.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보았는데 무작정 어려운 사건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둘 중에는 수임료가 높을만한 사건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실제 내가 수임한 사례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니 수임료의 다과보다 실제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이 의뢰인을 도와주고 싶은가 아닌가였다.
내가 의뢰인을 도와주고 싶었던 사건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은 의뢰인이 처한 상황이 매우 딱한 경우이다. 경제적인 이유일 때도 있지만, 의뢰인이 법률의 부지, 증거의 부족 등으로 법률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러한 불리한 상황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경우이다. 재판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부합하고, 공평해야 하며,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절차인데, 재판을 통해서 부당한 결과가 확정되고 그에 공적인 힘이 부여되는 것을 참기 어려운 것이다. 꼼꼼하게 사실관계와 증거를 확인한 결과 의뢰인의 주장이 온당하고, 상대방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여기면 그때부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부당한 결과를 막기 위해 심신을 갈아넣는 편이었다. 군복무를 대신하여 공익법무관으로 활동할 당시에 PPT를 만들어 진실을 가려보자는 재판부 요청에 국선변호사로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와 겁 없이 논쟁한 것도, 법무부 소속 공무원임에도 검사 앞에서의 자백이 임의성 없는 것으로서 해당 수사관을 증인으로 불러야한다고 강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흡사 영화 ‘신과 함께’에서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억울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수호자 같은 심정인 것이다. 건방진 듯 보이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라는 자신감, 책임감이 그 에너지원이 된다.
지난 주에 2년에 걸친 무고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성폭행사건의 피해자로 알게 된 의뢰인은 피해 직후 피해자다운 행동을 취하지 않고, 적시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졸지에 무고죄의 가해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사건의 혐의자는 술에 취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 1년 전 사건을 영상을 보며 진술하듯이 또렷이 기억한다며 진술하였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그 입장변화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의도적으로 녹음한 내용 하나에 꽂혀서 사건의 실체를 가려줄 많은 간접적 증거를 외면하였다. 결국 무고죄로 재판을 받게 된 의뢰인은 법정에서 그 진실을 가리고자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1심 재판부 역시 마찬가지의 태도였다. 실체적 진실을 엄밀히 따져보려고 하면 넘길 수 없는 많은 간접적 정황에 대하여 묵비하였다. 의뢰인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였는데 정말 화가 난 것은 그 판단이 아니라 그 이후의 태도였다. 의뢰인이 극구 부인을 하고 다투는 사건이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했음에도 1심판사는 법원공보판사를 통해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자신이 정의의 이름으로 꽃뱀을 처단하였다는 듯이. 세상은 의뢰인을 욕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감옥에 가고, 그 일을 알지 못하던 주변사람들이 알게 되자 의뢰인은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었고 교도소에서 처음 접견을 하였을 때 “다 인정할테니 여기서 빼내기만 해달라”고 울고불고 사정을 하였다. 그런 의뢰인을 다독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천우신조라고 할까. 하늘은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경험한 그 어떤 형사항소심 재판부보다 꼼꼼한 재판부에 배당이 된 것이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며 한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5개월 만에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1년간에 재판을 하면서 본 사건의 쟁점을 4가지로 대별하여 개별적 쟁점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의견을 구하였다. 항소이유서, 변호인의견서를 작성하느라 밤샘작업을 하기도 하였지만 힘들기보다는 신이 나서 일했다. 어디 이래도 유죄를 쓸 수 있겠냐고 겁박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거의 생략하는 피고인신문을 하면서 의뢰인이 경험한 피해를 생생한 언어로 재판부에 보고하였다. 최후변론을 하면서는 후련한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1년이 넘게 걸린 항소심 재판 끝에 의뢰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은 이 사건에서 당연히 고려되었어야 할 간접정황에 대한 판시로 꽉 채워졌다.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몇 차례나 거짓말을 일삼았던 상대방에게 한방을 먹이고 진실을 지켜낸 거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점심에 중국집을 가서 탕수육에 소맥을 때리고 말았다. 제 일처럼 좋아하는 아내와 딸에게 “이 맛에 변호사 한다”며 잘난 체를 했지만, 선고를 들은 직후에는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관장하시는 신께 감사를 드렸다. 14년차가 되었지만 다행히 내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