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오늘 시간이 괜찮냐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였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먼저 식당에 도착해서 이미 소주 1병을 비워버린 친구를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나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용주야 나 사기 당한 것 같아."

내 친구는 2년 전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아파트에 입주했다. 곧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던 친구가 그동안 모은 돈과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마련한 신혼집이었다. 잔금을 치른 후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신혼생활을 시작한 친구 부부는 운 좋게 청약도 당첨되어 23년 입주를 앞두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얼마 전 임대인으로부터 자신이 전부터 체납한 세금(상속세, 재산세 등)이 있는데 세무서로부터 압류가 들어올 것이니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임대인은 자신도 돈이 없어서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친구는 바로 아파트 등기부를 발급받아보았고 최근 세금체납으로 인해 부동산에 압류가 되어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계약할 때는 등기부가 깨끗했는데... 임대인은 미안하지만 본인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 했다.

공매의 배당절차에서 지방세, 국세 등의 당해세는 임차인의 보증금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때문에 목적물(아파트)에 대해 공매가 진행될 경우 매각대금에서 임대인의 지방세, 국세 등을 빼고 남은 금원에서 보증금 상당액을 배당받게 된다. 즉 부동산의 가액과 전세보증금의 차이가 크지 않거나 유찰이 될 경우 보증금을 전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임대인은 친구와 전세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미 미납한 세금이 있었음에도 이를 친구에게 알리지 않았다. 만약 친구가 전세보증보험을 미리 들어놨더라면 보증금 전부를 회수할 수 있었을 것이나 친구는 자신에게는 별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계약 당시에는 근저당권이나 (가)압류가 없었으니까.. 친구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임대차 사건과 관련된 상담을 하면서 내 친구와 같은 사례를 자주 보았다. 등기부에 기재되어 공시되는 근저당권이나 (가)압류 등과는 달리 임대인의 체납사실은 체납과 동시에 부동산에 압류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3자는 임대인이 먼저 이야기해주지 않는 한 임대인의 체납사실을 알 수 없다. 추후 세무서에서 부동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위해 압류절차를 진행하고 나서야 임차인은 임대인의 체납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인들이 집을 구하는 경우, 가능하면 임대차계약체결 과정에서 임대인으로부터 지방세 및 국세 납부확인서를 받아보라고 조언하곤 했다. 물론 임대인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체납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 보증금 반환에 전혀 영향이 없을만한 체납사실이 존재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까지 밝혀야하나 생각하는 임대인도 있을 것이고 설사 체납세금이 없을지라도 단순히 기분이 언짢음을 이유로 계약을 거부하는 임대인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의 동의 없이 집주인의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고, 부동산이 경매 등으로 넘어갔을 경우 체납된 세금보다 보증금을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는 내용의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하는데, 위와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전월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가입하는 것이다. 얼마 전 1,139채의 주택을 보유한 '빌라왕' 김모씨가 사망하면서 보증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은 세입자들의 문제가 기사화 되었는데, 임차인 약 1,100명 중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약 600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고 게다가 자력까지 없는 경우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보험을 가입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보증금 회수가 (즉시)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