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 손해배상소송의 적대적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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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2-12-26본문
형법에 규정되어 있던 ‘간통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역사적 유물이 되었다.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적어도 범죄로 취급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간통죄 폐지를 둘러싼 찬반 대립은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그것보다는 치열하지 않았다. 개인이 부부관계에서 지켜야할 정조의무, 신뢰관계를 깨뜨린 것에 대하여 이혼소송의 귀책사유로 보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범죄로 보아 처벌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보편화되고, 경제적 능력이 신장되면서 보호의 대상으로서만 여성을 평가하는 것도 실태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간통죄 폐지의 주요 근거였다.
암튼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오롯이 민사(가사를 포함한)의 문제로 남게 되었다. 민법 제840조에서 이혼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부정행위에 대하여 판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부정행위란 간통을 포함하여 보다 넓은 개념으로서 간통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하나 부부의 정조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일체의 부정한 행위가 이에 포함된다(대법원 1988. 5. 24. 선고 88므7 판결 등 참조). 즉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부정행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유지를 방해하고 그에 대한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하여 배우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법리이다.
배우자와 바람피운 상대방을 감옥으로 보낼 수 없다보니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소송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다보니 실무에서 인정되는 위자료는 피해자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신의 배우자가 유부남 또는 유부녀인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되는데, 보통 상대방 입장에서는 법률상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대응하거나, 법률상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형해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원고는 부정행위의 기간, 정도에 따라 통상 3천만원에서 5천만원 정도를 청구하고 조정 내지 판결을 통해 1,500만원 내지 3천만원 정도가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소송을 할 때 입증할 내용, 청구금액이 정형화되어 있고, 소송을 당한 쪽에서 대응하는 논리, 최종적인 인용금액 등이 예상되기 때문에 공식처럼 진행되는 편이다.
원고측 변호사는 입증자료가 부족한 경우에도 일단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의 통상 인용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청구하고, 피고측 변호사는 부정행위가 사실인 경우에도 일단 부인을 하거나 배우자가 있는 사실을 몰랐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증자료가 부족해서 승소소가능성이 적거나, 부정행위가 명백하여 패소판결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고민은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적당한 감액을 권하는 조정을 통한 해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승자도 완전한 패자도 없는 조정에 의한 해결이 가능하다보니 변호사들도 이러한 사건을 선호한다. 엄청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은 공생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정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 예외적으로 억울하게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좀 더 엄격한 기준 하에 부정행위를 인정하고, 부정행위가 인정되었을 때에는 그 책임을 무겁게 부과하는 것이 재판을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법원의 바람직한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2022년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2022년도 마지막 소송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