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를 처리하면서 느끼는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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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준 변호사 작성일23-01-31본문
보이스피싱. voice라는 단어와 fishing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전화금융사기를 말한다.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가 새롭게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조선족이 어눌한 말투로 전화금융사기를 시도하는 것을 개그의 소재로 삼은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황해’가 나온 게 2013년도니까 벌써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전화금융사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십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통장을 마음대로 개설할 수도 없게 되었고, 통장을 개설할 때에는 각종 안내문에 부가로 서명을 하게 되었다. ATM기기를 통해 송금을 할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이 제시되게 되었으며, 통장이나 현금카드 등을 양도하거나 빌려줄 경우 처벌이 된다는 법률조항도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스피싱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마약이나 도박, 성매매 등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 범죄가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속이는 신흥범죄가 이렇게 오래도록 근절되지 않고 성행하는 것은 왜일까.
보이스피싱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계속되고,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수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진화하였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공소장에 드러난 조직구조를 보면 대충 이렇다. 전화금융사기 조직은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들로부터 금원을 송금 또는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는 속칭 ‘보이스피싱’ 수법의 범행을 하는 조직으로서, 범행 전체를 총괄하며 내부 각 점조직 간의 유기적인 연락을 담당하는 ‘총책’, 총책의 지시를 받아 내부 조직원들을 관리하며 그들에게 기망 수법과 현금수거 방법 등을 교육·지시하는 ‘관리책’,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들을 기망하는 ‘콜센터’, 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을 인출하여 저달하거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돈을 받아오는 ‘현금인출책·현금수거책’ 등으로 각각 역할을 분담하는 등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구조적으로 최상위에 있는 총책이나, 그 아래 중간관리자격인 관리책, 직접 전화를 거는 콜센터가 잡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역할을 하는 범죄자들을 국내가 아닌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 사무소를 차리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수시로 옮기기 때문에 이들을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보이스피싱 피해가 신고되면 잡히는 사람은 대부분 현금인출책, 현금수거책이다. 이들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는 CCTV의 왕국이다.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사용한 ATM기기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현금을 받기 위해 피해자를 만난 장소만 특정되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찾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다. 현금인출책·현금수거책이 발각되어 처벌받을 확률이 높아져 공범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현금인출책·현금수거책을 취직 또는 알바라는 명목으로 속여 이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비대면으로 면접을 본다고 그럴듯한 말로 구직자를 속이고, 근로계약서, 이력서 등을 작성·제출하도록 하여 의심을 지워버린다. 처음엔 사무보조 일을 한다고 하였다가, 차츰 신용불량자들을 대신하여 금융업무를 봐주는 것도 업무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현금수거책으로 사용한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들이는 공만큼을 현금인출책·현금수거책을 포섭하기 위해 들이는 것이다. 우리 의뢰인은 한달쯤 일을 했을 때 이제 정직원이 되었다고 하자, 그 업무를 지시한 사람에게 이제 건강보험을 지역가입자에서 직장가입자로 전환할 수 있는거냐 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깜빡 속아버렸다.
이런 사건을 처리하다보면 미필적 고의와 인식있는 과실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속아서 일을 한 현금수거책에게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의 논리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많은 점, 정식채용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회사를 찾아가보지 않은 점, 다수의 주민번호를 위해 송금하는 것은 불법적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버린다. 그렇지만 사후에 돌이켜보아 이런 점들을 신중히 고려하지 못한 것을 과실로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어쩔수 없지라고 용인 내지 감수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면 그렇지 않은 사안이 많다. 이런 경우 의뢰인에게 유죄가 인정될 수 있으니 자백을 하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억울한 사정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다투어보자고 해야하나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그 치열한 고민에서 난 절충안을 선택하게 되었다. 억울한 사정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다투어보는 것과는 별도로 민법상으론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책임도 인정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일부 피해를 변제하는 것이다. 혹시 유죄가 인정되었을 경우 아무런 피해변제가 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되는 최악은 피하기 위한 것으로서, 꼼수라면 꼼수다. 하지만 의뢰인을 억울함을 밝히면서도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꼼수라면 비난하기 어렵지 않을까. 수사기법이 더 발전되어 진짜 나쁜 놈들을 발본색원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